2009년 05월 25일
학교에 다니던 시절, 몇 차례 악몽을 꾼 적이 있다.
내용은 다 달랐지만, 그 꿈들 중에서 한밤 중에 소리치며 깨어날 만큼 무서웠던 부분은 똑같았다.
그건 사람에게 일어나는 어떤 '변화'였는데, 그 변화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고,
굳이 말하자면 '분위기'의 변화였다.
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, 십여 초 정도의 시간에 걸쳐 사람 아닌 것으로 변하는 거였다.
그것은 때로는 죽음이었고, 어떤 때에는 죽음이 아닌, 일종의 변신 비슷한 것이었다.
어느 때에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. 하지만 전과 같은 모습의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무엇이었고,
그 존재 자체가 끔찍하게 공포스러웠다.
그 공포의 기억이, 영화 '박쥐'와 내 안에서 맞닿았다.
뱀파이어가 된 인물들은, 그 전과 똑같은 모습을 지닌다. 그 흔한 송곳니조차 나지 않는다.
하지만, 사람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무언가가 그들 안에서 무너져내렸고, 그 이후 그들의 모습은 공포스럽다.
그들은 자신의 주변과 그들 서로를 점점 무너뜨리기 시작한다. 마치 영화는, 그런 파괴적인 행위로부터 사람을
막아주는 것은 사람의 '틀'이지, 사람의 내재적 선함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.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던,
그렇지 않던 간에, 깨져버린 틀의 틈새로 솟구쳐나오는 건 강렬한 '충동'이다. 족쇄를 깨어버린 충동은, 인간의
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. 어느 틈엔가, 의지의 약함을 틈타 그 충동은 바깥으로 뻗쳐나오고,
의지가 강했으면 강했을 수록 그 분출의 세기도 커진다. 그리고 어느새 그 충동은 다시 돌아와 그 주인의 몸과
마음을 찢어놓는다. 통상의 외상으로는 죽지 않는 뱀파이어에게 이것은 영원한 고통이다.
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너진 조각들을 붙들고 있던, 틀이 무너진 것을 자유라 생각하며 제 안에 있는
광풍에 몸과 마음을 맡기던, 인물들은 구원을 찾지 못한다. 신께 기도를 올리지만, 그것은 자기 입 속에서 맴돌 뿐
자기 밖을 빠져나가지 못한다. 여느 영화 때와 마찬가지로, 인물들은 구원이라는 축을,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
빙빙 돌다가 멈추어버린다.
결국 충동과 상처와 고통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에 영화는 도달한다. 이 결론은
도덕적인 선택도 아니고, 순교자적 자기희생도 아니다. 사람의 틀을 깬 존재가 택할 수 밖에 없는, 논리적인 결론일 뿐.
그래서 슬픔도, 숭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. 배경이 되어 준 사막처럼 건조하다.
# by 오재 | 2009/05/25 23:22 | 트랙백 | 덧글(1)